Oh Jhin Ryung
<1> 곡예사와 관객

어릴 적 제가 살던 인천에도 동춘서커스단이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한창 지는 별이었던 동춘서커스단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우리 고향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또 제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고 신나게 보고 동무들하고 얘기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보고 배울 때까지 '동춘서커스단'이 이 모임을 만든 '박동춘'씨 이름에서 왔다는 걸 몰랐습니다. 인천에 '동춘동'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온 모임이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동춘서커스단은 지금 나라안에 딱 하나 남은 서커스단입니다. 지금 이 서커스단을 이끄는 박세환 단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커스를 보면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저 사람들의 웃음과 감동을 뺏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동춘은 내 것이 아니고 관객들의 것,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28쪽>
서커스. 저는 서커스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커스를 보며 받는 감동과 웃음과 눈물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요. 다만 "공연을 보고 나서 하루 종일 회상에 젖어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철 지난 양복을 빼어 입은 어느 할아버지는 비싸다며 기어코 천 원을 깎아 표를 산다. 서커스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어느 엄마가 아이에게 말해 주는 소리도 들려오고, 대낮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자<22쪽>"도 보는 서커스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가요? 동춘서커스단은 "웃지 못했다면, 재미없다면 입장료 반환합니다"란 푯말을 큼직하게 써붙이고 공연을 한다는데 아직까지 입장료를 물어 내라 한 사람이 없었대요. 누구나 찾아오고, 모두들 공연에 흠뻑 빠지고 즐긴달까요. '불쌍한 사람'이 아닌 '삶을 즐기고 곡예를 즐기는 사람'인 곡예사이나 공연을 즐기는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느 나라는 곡예를 가르치는 전문학교도 있고 나라에서 뒷배도 봐준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배 곯고 불쌍하고 할 짓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을 '서커스'라 여기면서도 서커스를 보러 오는 우리들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누가 곡예사이고 누가 관객일까요?

<2> 똑같은 사람 삶인 곡예사 삶

..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겠는가? 곡예를 하다가 떨어져 몇 번씩 병원 신세를 진 그들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처럼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있다 .. <54쪽> 곡예사는 날마다 수없이 하늘을 납니다. 관객은 하늘을 나는 사람을 멀거니 구경합니다. 하늘은 누구나 날 수 있고, 하늘을 날며 느끼는 짜릿함이란 누구에게나 즐거울 텐데 우리들은 그저 구경만 합니다. 곡예단 사람들 사진을 찍은 오진령씨는 1998년부터 여섯 해 동안 곡예단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사진을 담았답니다. 어느 날 본 서커스 공연에 꼼짝도 못할 만한 감동을 받아 사로잡힌 그이는 서커스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 싶었답니다. 여섯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 열흘씩 함께 지내며 살았답니다. 처음에는 구경만 하던 오진령씨였는데, 곡예사들과 함께 지내며 곡예사들에게도 '자기와 똑같이' 소박하고 자유롭고 진정 어린 삶을 살아가지만 순정하고 여린 탓에 생채기를 많이 받는 모습에 함께 가슴 아팠답니다. 곡예사 가운데에는 자기과 같은 나이 동무가 있었답니다. <곡마단 사람들>에는 그 동무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데, 어느 날 곡예사 동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죠.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88열차도 함께 탔다는데 그렇게 무서워하더랍니다. 줄 타는 곡예사인 그 동무가 말이죠. 줄 타는 곡예사가 고작 바이킹 따위에서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스러웠다. 그 공포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 곡예사라고 해서, 줄을 탄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날마다 그 큰 두려움을 견디는 것일 뿐이다 .. <156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곡마단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알뜰히 담은 <곡마단 사람들> 머리말을 읽습니다. 오진령씨는 우리들에게, 그러니까 서커스를 겉으로 구경만 하는 우리들에게 "서커스를 어린 시절의 과거 한때의 추억으로 돌려 버리고 외면"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겁니다.
동춘서커스단에 있는 곡예사들은 "팔십 년 가까운 역사를 등에 지고서, 곡예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오늘도 사람들을 재미와 감동으로 울고 웃게 하면서 한 해 내내 전국을 유랑하고" 있다고.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것"으로 서커스를 바라보면 좋겠다고요.

<3>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까

곡마단 사람들은 열흘 걸려 공연할 천막을 세운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걷어 내릴 때에도 닷새 남짓 걸린답니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이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형편이기에 제대로 연습할 짬이 없고 새로운 곡예를 갈고 닦을 짬이 없답니다.

한겨울 공연이 없을 때에는 노동판에 나간다는 그이들. 여느 때에 20~30미터 되는 곳도 너끈히 올라가던 사람들이라 건물을 높이 쌓는 노동판에서 인가가 '가장 좋답'니다. 인기 있고 돈 많이 버는 운동선수들은 한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가서 '전지훈련'을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은 살림돈을 벌고자 노동판에 갑니다. "곡예사로 꼭 성공해서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이들이 곡마단에, 동춘서커스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장 밖에서 손님을 맞는 원숭이들에게 사람들은 인사 치레인 양 손가락질을 하거나 무언가를 집어던지곤 한다. 그러나 정작 원숭이들은 사람들의 그런 무례한 행동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아량을 보인다. 서커스와 동고 동락해 온 오랜 연륜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 <148쪽>
는 이야기에서 보듯 곡마단과 함께 다니는 짐승들은 거의 놀림감입니다.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에게 '함께 공연하는 짐승'들은 둘도 없는 벗이요, 아낌없는 동무예요.
책을 두어 번 되풀이해서 읽고 보다가 이제는 덮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난 뭐하러 <곡마단 사람들>이란 책을 사서 읽었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곡마단 이야기를 뭐하러 보았는지, 보면서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를요. 사회에서 푸대접받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가슴 아프게 읽었는지?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는지?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인지? 찬찬히 헤아려 보지만 뚜렷한 실마리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곡마단 사람들이라 해서 어디 먼 별나라 사람도 아니고, 뚱딴지 같은 사람도 아니며,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성공만을 좇는 딴따라도 아닌 한편으로, 나와 똑같이, 우리와 똑같이 삶을 즐기는 이웃이라고 봅니다.
오진령씨에게 사진 찍힌 어느 곡예사가 한 말을 마지막으로 책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덧붙여 44~45쪽, 74~75쪽, 102~103쪽, 134~135쪽 사진은 두 쪽에 걸쳐 사진을 담았으나 사람 얼굴과 몸이 가운데에 접힌 채 잘려서 보기가 참 안 좋습니다. 사진을 많이 넣어서 엮는 책이라면 좀더 엮음 새에 눈길을 두어야지 싶어요. 130쪽에 '대한 민국'이라고 띄어서 썼는데 '대한민국'이라고 붙이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커스 하면 불쌍한 놈들, 몹쓸 놈들이라고 하지. 이런 데에 산다고 해서, 옷도 아무렇게나 입는다고 해서 불쌍한 건 아니야...... 그건 그렇고. 우리 사진은 왜 찍어? 뭐에 쓰려구 그래? 서커스를 찍어간 사람이야 많지. 그래도 내가 보기엔 제대로 찍은 사람은 드물어. 이왕 찍는 거, 잘 좀 찍어 봐" .. <158쪽>